일시:2024년 02월 12일
장소:남원 광한루원
주소: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쌍교동 320(주차장주소)
지금의 광한루는 1170년(의종 24) 전중감(殿中監)이었던 황공유(黃公有)가 무신의 난으로 벼슬을 버리고 남원으로 내려온 뒤, 그의 후손 황감평이 이곳에 일재(逸齋)라는 조그마한 서실(書室)을 지은 때부터 유래된다.
광한루의 시초는 조선 세종 원년(1419) 황공유의 아들인 황희(黃喜)가 한때 남원에 유배되었을 당시, 일재의 옛터에 광통루(廣通樓)라는 작은 누각을 지어 산수를 즐긴 것에서 비롯된다.
1444년(세종 26)에는 전라도관찰사 정인지(鄭麟趾)가 광통루의 아름다움을 월궁(月宮)에 비유하여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칭한 것에서 광한루라 부르게 되었다.
1461년(세조 7) 부사 장의국(張義國)은 누원 일원에 요천강의 맑은 물을 끌어다가 은하수를 상징하는 호수를 만들었다.
1582년 정철(鄭澈)이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하여 또다시 은하의 못 가운데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상징하는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洲) 섬을 만들어, 봉래섬에는 백일홍을 심고 방장섬에는 녹죽(綠竹)을 심었는데, 영주섬에만 영주각을 건립하고 섬과 섬 사이에는 사다리꼴 다리로 연결하였다. 이로써 광한루원은 천체와 우주를 상징하는 누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왜적들의 방화로 모두 불타버렸다. 1607년(선조 40)에 작은 누각이 복구되고, 1639년(인조 17)에 남원부사 신감(申鑑)이 현재의 광한루를 복원하였다. 1794년(정조 18)에는 부사 이만길(李萬吉)이 영주각을 재건하였다.
1869년(고종 6) 무렵 광한루 본관이 차츰 북쪽으로 기울어져 이를 방지하기 위해 누의 북쪽에 다락을 세워 층층대를 만들어놓았다. 1925년 수리공사 때에 누의 동쪽 구석에 직실(直室)을 마련하였다.
1963년에는 주변의 토지를 매입하고 호수 주위를 정비하여 국악원, 월매(月梅)의 집과 방장섬에 육모정을 세웠으며, 이듬해인 1964년에는 방장섬에 방장정(方丈亭)이 건립되었다. 1965년에는 영주각을 단청하고, 1969년에는 호수를 확장하고 수중누각 완월정을 세우는 한편, 지금까지 북쪽을 정문으로 써 오던 것을 후문으로 삼고 따로 남쪽에 정문을 신축, ‘廣寒淸虛府(광한청허부)’라는 현판을 써 걸었다. 1983년에는 다시 경력을 확장하여 누원 주변을 정비,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이 광한루는 이몽룡과 성춘향의 「춘향전」으로 더욱 유명하여졌는데, 1931년에 지어진 춘향사에는 ‘만고열녀춘향사(萬古烈女春香祠)’라는 현판이 걸리고 김은호(金殷鎬)가 그린 춘향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해마다 음력 5월 5일 단오절(端午節)에는 춘향제가 성대히 열린다. [네이버 지식백과] 광한루원 [廣寒樓苑]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입장료 있습니다.(구정연휴는 입장무료입니다.)
광한루원 풍경들입니다. 너무 잘되어 있어 풍경이 끝내주네요.
남원예촌 풍경들 입니다.한옥펜션도 있습니다.
한옥펜션
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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