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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견학,풍경

세계유산 경주양동 마을

by boza 2015. 5. 3.

마을 이름인 양동은 ‘군주를 어질게 도울만한 인재가 사는 마을’이란 뜻으로, 월성 손씨 가문과 여강 이씨 가문이 정착해 서로 협동하고 경쟁하며 살아온 유서 깊은 양반마을이다.
양동마을은 풍수지리상 이상적인 길지인데, 뒤로는 설창산, 앞으로는 안강 들판이 자리하고 그 사이로 형산강과 안락천이 휘돌아 흐르는 곳에 마을이 아늑하게 들어서 있으며 안강 평야의 농산물과 형산강에서 얻은 수산물은 오랜 세월 마을주민들이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되어주었다.
2010년 8월 1일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양동마을은 500여년이 넘는 전통의 향기를 품은 약 150여 호의 기와집과 초가집이 마을을 이루고 있는데, 문화재로 지정된 건축은 한옥, 서당, 정자, 영당 등 약 20여 채이다.
양동마을이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몇 가지 특별함은 풍수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마을로 건축과 자연이 잘 어우러져 있으며 그 모습이 오늘날까지도 잘 유지되고 있는 점이다.
이곳에서는 조선시대 문신이며 청백리인 우재 손중돈과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 등 걸출한 인재들도 배출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의 하나면서 대대로 후손들이 마을을 지키고 문화를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향단 화려한 외관이 눈길을 붙잡는 집으로,‘관가정’과 함께 마을의 첫인상을 좌우하며 여강 이씨 가문을 상징하는 건축물은 조선 시대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1491∼1553)이 경상 감사로 있을 때, 모친의 병간호를 하도록 중종이 지어 준 집이다.
양동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특이한 구조의 집 중 하나인데. 원래는 99칸이나 되는 집이었다.
전쟁을 거치면서 일부가 소실되어 현재는 51칸만이 남았지만 행랑채, 사랑대청, 안사랑채, 마당이 모두 연결되어 있는 특별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물봉동산 물봉동산에서 내려 보면 아래로 보이는 골짜기가 ‘물봉골’, 그 뒤는 ‘안골’이다.
또한, 위에서 아래로 마을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위쪽에는 양반들의 기와집들이 아래쪽에는 서민들의 초가집이 많다.


무첨당 무첨당은 여강 이씨의 종가이다.
무첨당은 제청, 사당, 본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기적으로는 본채가 가장 먼저 지어졌고 그 후에 제청과 사당이 자리를 잡았다.
종가로서 이 집의 지위는, 마을의 다른 집보다 큰 규모 뿐 아니라 집의 구조에서도 느낄 수 있다. 종가답게 사당이 제일 위에 있고 그 아래에 제청과 살림채를 나란히 두었다.


내곡정 내곡 이재교를 기리는 ‘내곡정’이다. 일생을 소박하게 살았던 그를 기리기 위해 후손과 친구들이 지은 작은 정자로 평소 그가 다니던 곳에 지어졌으며 정자의 이름도 그의 호를 따랐다.
내곡 이재교는 1884년 고종 21년. 의복 등에 관한 복제개혁 조치에 반대해서 올린‘복제개혁반대 만인소'를 영남 선비들의 대표 자격으로 올린 장본인이었다.


낙선당 양동 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동족마을로, 넓은 안강 평야에 전통 깊은 여러 집들을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이 집은 낙선당 손중로 선생의 종가집으로 월성 손씨의 종가인 손동만 가옥 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중종 35년(1540)에 지은 집으로 ‘낙선당’이란 이름은 원래 사랑채의 이름이다.
손종로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정조의 명으로 세워진 비각이 바로 마을입구의‘정충각'이며 그 옆에는 노비 억부를 기리는 비각도 함께 있다.


서백당 월성 손씨의 종가‘서백당’은 양동마을 시조인 양민공 손소가 짓고 살았던 집이다.
양동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살림집일 뿐만 아니라 현재도 사람이 살고 있는 집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집 중에 하나이다.
이 집은 몸채와 행랑채가 높은 기단에 세워져 있다.
경사가 급한 땅에 지어져 집의 높낮이를 맞춘 것인데, 그 모습에서 오히려 종가의 위상이 느껴진다.


사호당 고택 공식명칭 '사호당 고택'은 이 집에 살았던 여강 이씨의 후손인 이능승의 호를 따서 나중에 붙여진 이름으로 대외적으로는 사호당이다.
그런데 마을사람들은 안골 진사댁 이라고 더 많이 부르는데, 이능승의 아버지인 진사 이재로의 이름을 더 익숙하게 여겨 지금까지도‘안골 진사댁’이라고 부르고 있다.


대성헌 18세기 중엽에 건립된 목조 가옥 살림집으로 양동마을 서쪽에 있는데, 지형 상 남서향으로 안채, 사랑채, 행랑채가 현존하고 있다.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34호로, 막돌로 쌓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그 위에 네모기둥을 세웠으며, 소로받침 없이 납도리를 받쳤다.
이러한 건축양식은 다른 건축물에서는 보기 드문 특이한 구성이다.


상춘헌 고택 길게 누운 향나무가 대문 대신 손님을 맞이하는 집, ‘상춘헌고택'은 여강 이씨의 동고 이덕록이 건립한 집으로 그의 후손인 상춘헌 이석찬의 호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이 집에선 여느 살림집과 조금 다른 모습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상춘’은 봄 경치를 구경하며 즐긴다는 뜻인데,‘상춘헌’은 화단이 아름다운 집이다.


안락정 ‘안락정’은 월성 손씨의 서당으로 ‘강학당’ 보다는 먼저 건립됐지만 서로 대칭을 이루며 마을 교육을 담당했던 장소이다.
그런데 이곳이‘정자’인 이유는 시간이 흘러 후손들이 이곳을 사들여 정자로 삼았고 그 이름을 ‘안락정’이라고 붙였기 때문이다.
마을 서쪽에 흐르는 안락천 에서 따온 말로 '내가 편안한 것은 남에게도 편안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남도 좋아한다.'는 뜻이다.
이는 들판과 넓은 산천의 빼어남을 바라보며 길이길이 즐기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강학당 강학당’은 여강 이씨의 또 다른 서당인 ‘경산서당’보다 역사가 깊고 월성 손씨 문중의 ‘안락정’과는 쌍벽을 이루며 후학을 양성해 온 교육장소이다.
이곳은 대사간을 지낸 지족당 이연상의 아들 경암 이재목에게 배운 제자들이 그의 뜻을 받들어 건립한 강당이었다.
안락정’과 함께 ‘조선시대 사당 가운데 문화재로 지정된 중요한 건축물이다.


육의당 임진왜란 때 창의하여 전공을 세우고 서생포 첨사를 지낸 ‘육의당’ 최계종(1570∼1647) 선생이 광해군 11년(1619)에 지은 별장으로 집의 이름도 그의 호를 따서 ‘육의당’이라 하였다.
구릉지대에 동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장방형으로 토석담장을 둘러쌓은 마당 안에 육의당을 앉혔고, 앞쪽에는 사주문, 뒤쪽에는 협문을 내어 외부와 통하게 하였다.


근암고택 양동 ‘근암고택’은 정조 4년(1780)에 태로 이정수가 지었다 한다. 그의 4대손인 홍릉 참봉 이희구의 호를 따 ‘근암고택’이라 불리는 가옥이다.
이 가옥은 이 마을의 다른 사대부가의 집과 마찬가지로 계곡에서 올라간 높은 산 중턱에 시야가 탁 트인 지점에 자리하고 있는데, 대문간채, 안채, 사랑채, 곳간채 등의 4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곡 고택 조선 영조 9년(1733) 경에 이언적 선생의 6대손 이제중 선생이 지었다고 전해지며, 그 후 두곡 이조원이 이 집을 사들이면서 그의 호를 따 ‘두곡고택’이라고도 한다.
상당히 규모가 큰 집으로 안채, 사랑채, 아래채 외에 대문채, 행랑채, 마구간, 방앗간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특히 하인들이 사용하는 측간이나 주로 일을 하는 디딜방아 건물 등은 초가집으로 만들어 위계질서와 함께 건물의 용도와 실용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수운정 조선 중기의 문신 손중돈의 후손 손재취가 선조 13년(1580)에 건립한 목조가옥이다.
전체 2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방향은 서남쪽의 안강평야를 바라볼 수 있도록 배치되었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 자리한 ‘수운정’은 ‘물과 같이 맑고 구름처럼 허무하다’라는 ‘수운청허’에서 따온 말이다.


수졸당 수졸당은 물봉골을 따라 조금 들어가다 왼쪽의 산길로 가파르게 올라가 거의 동산 정상에 다다르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언적 선생의 넷째손자 수졸당 이의잠 선생이 세운 고택이다.
조선 광해군 8년(1616)에 처음 지었으며, 영조 20년(1744)경 6대손 대사헌 양문당 이정규 선생이 사랑채를 늘려 지었다고 전한다.


심수정 양동마을의 마을회관 옆으로는 하늘로 비상할 것 같이 잘 생긴 누마루가 버티고 섰으니 이 건물이 심수정이다.
마음을 고요한 물과 같이 가지라는 뜻으로 이 정자에는 후손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세 가지 현판이 있다.
벼슬길을 마다하고 형인 회재 이언적을 대신하여 어머니를 극진히 모신 농재 이언괄( 1494~1553)을 추모하여 지은 정자이다.
이향정 숙종 21년(1695)에 건립한 주택으로 온양군수를 지낸 여강이씨 이향정, 이범중과 그의 맏아들 이헌유가 살던 집이다.
양동마을의 안골로 들어가는 동구 초입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ㄱ자형 안채와 一자형 사랑채·아래채·곳간채로 이루어져 전체 구조는 튼口자형으로 배치된 집이다.
토담으로 된 담장을 들어서면 사랑채 동단에 있는 중문이 마주 보인다.

 

경주시청 : http://guide.gyeongju.go.kr/deploy/

경주 양동마을 홈페이지: http://yangdong.invil.org/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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