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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견학,풍경

창원 성주사

by boza 2019. 3. 5.

주소:경남 창원시 성산구 곰절길 191

출처: http://성주사.한국/(성주사홈피)

대한불교조계종 성주사               

성주사의 창건 설화는 가야불교의 인도 직수입설(불교남방전래설)을 주장 한다.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오면서 함께 온 사촌오빠 장유화상(허보옥)이 머무시도록 김수로왕께서 창건한 가야시대 고찰로서 임금이 지은 절이라 하여 금(金)절이라 불렀다. “김수로왕과 왕비 허왕옥 사이에 난 아들10명중 일곱명이 모두 불모산 으로 들어가 스님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 창건 되었다는 설화가 김수로왕 창건” 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지금도 성주사에는 이런 설화를 뒷받침하는 ‘어수각’ 이라는 우물이 하나 전해져 오고 있다. 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이 우물은 김수로왕과 허왕후 사이에 10왕자 중에 일곱 왕자가 출가하여 수행을 하고 있을 때 왕께서 왕자들이 보고 싶어 절을 찾아 왔을 때 마신 우물이라 하여 ‘임금이 마신 우물’ 이란 뜻으로 어수각 ‘御水閣’이라 이름 하였다. 또한 인도에서 모시고 온 불상이 있었는데 일본으로 모시고 갈려다 풍랑으로 마산 바다에 빠뜨렸다는데 대중들이 천신만고 끝에 다시 모셔온 분이 관음전에 모셔진 관음보살 상이라고 하는 설화가 있다.

중창 설화는 827년(신라 흥덕왕 2년)에 동쪽으로부터 왜구가 바다를 메우듯 병선을 이끌고 침범하자 왕이 왜적을 격퇴할 방안을 여러 신하들에게 묻자 서로 결론을 얻지 못하기를 연 5일째 되는 날 밤에 어떤 신인이 왕께 현몽하여 말하기를 지리산 중에 무염이란 화상이 있으니 화상을 불러 격퇴방안을 문의하면 왜적을 격퇴하기가 어렵지 아니하다 하거늘 왕이 곧 사자를 보내어 무염화상을 주거케 하고 격퇴계책을 물었다. 이에 무염화상이 곧 석장을 산 위에 세우고 왼손으로 배를 치니 그 소리에 천지가 진동함과 동시에 철갑을 한 병사가 즉시 출현하여 산의 주위에 둘러쌓다. 왜적이 그것을 보고 크게 놀라 분산 도주 하였다. 왕께서 이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무염화상을 왕사로 모시고 또 사은을 갚은 뜻으로 밭 360결과 노비 100호를 내려서 금(金)절을 크게 중창하게 하고 성인이 상주하는 절이라 해서 금절(金寺)이“성주사”로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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